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티브 가비 (문단 편집) === 아마추어 시절 === 플로리다 주 탬파 출신으로 뉴욕 주 [[롱아일랜드]]에서 이주해 온 부모님[* 아버지가 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|브루클린 다저스]]의 광팬이었다. 가비가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분.] 밑에서 태어났다. 유년 시절부터 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|브루클린 다저스]]와 [[뉴욕 양키스]], [[디트로이트 타이거스]] 등의 메이저리그 팀 스프링캠프에서 배트보이 역할을 하며 야구와의 인연을 시작했고, 다저스 스프링캠프에서 [[길 호지스]]를 본 뒤 그처럼 되겠다며 야구 선수의 길을 지망하게 된다. 이때 부모님에게 야구가 하고 싶다며 했던 말이 참으로 걸작이다.[*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지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'야구 글러브'라고 답했는데, 글러브 값은 25달러로 당시 화폐가치를 감안하면 꽤 비쌌다. 그래서 놀란 어머니가 머뭇거리자 가비는 '''"엄마, 지금 25달러를 투자하면 나중에 25,000달러를 받게 되실 거예요."'''라며 당돌하게 글러브를 요구했다고 한다. ~~될성부른 떡잎~~] 이후 챔벌레인 고등학교에 진학해 야구부에서 맹활약하던 도중, 1966년 드래프트에서 [[미네소타 트윈스]]에 3라운드 전체 60순위로 지명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[[미시간 주립대학교]](MSU)로 진학한다. 가비는 여느 1라운더들이 그렇듯, 대학교에서 야구선수로서도 탁월한 기량[* 공식경기 첫 타석에서 경기장을 넘어 학교 뒷편의 강가까지 뻗어가는 대형 만루홈런을 뽑아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.]을 뽐냈지만 [[미식축구]]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[[코너백]], 그 중에서도 주로 디펜시브 백으로 활약한다.[* 이런 가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MSU는 그를 2010년에 학교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고, 2014년에는 아예 그의 재학 시절 등번호인 10번을 '''[[영구결번/스포츠|영구결번]]했다.''' 아마추어와 프로 두 레벨에서 모두 영구결번이 된 흔치 않은 사례.] 이런 만능 스포츠맨 가비를 그냥 보고만 있을 메이저 리그 구단들이 아니었고, 결국 1968년 드래프트에서 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]]가 그를 1라운드 전체 13순위로 지명하며 가비는 어린 시절 배트보이를 했던, 그리고 아버지가 열성적으로 응원했던 그 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.[* 이 해 다저스의 드래프트는 '''역대급 드래프트'''로 평가된다. 이 해에 뽑았던 선수들 중 나중에 주전으로 자리잡게 되는 선수들([[빌 버크너]], [[데이비 롭스]], [[론 세이]], [[조 퍼거슨]] 등)이 문자 그대로 한 트럭이었기 때문. 여담으로 [[바비 발렌타인]]도 이 때 다저스에 지명됐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